라조르 모흐리 나기(Laszol Moholy Nagy : 1895 ~ 1945)


헝가리에서 태어난다. 법률가가 되려는 꿈을 버리고 1915년 미술로 전환한다. 1917년 구성주의 및 말레비치의 영향을 받는다. 1920년 베를린으로 이주하고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는다.


1922년 트리스탄 짜라는 모흐리나기에게 만 레이의 사진 12점을 보여준다. 그 사진들은 레이오 그래피라고 불렸던 사진들이다. 모흐리 나기는 만 레이의 사진에 심대한 영향을 받고 즉시 입체물에 의한 흡사한 패턴을 만드는 일애 착수 한다. 모흐리 나기는 이런 작업을 포토그램이라고 불렀다.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스는 1923년 그를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초빙한다.

바우하우스는 하나의 교회당을 건설하던 중세의 건축 방법을 본받아서 건축에 도움이 되는 모든 예술 양식을 통합하는데 중점을 둔다(건축을 중심으로 한 시각 예술 전반에 걸친 전위적인 예술운동. 기본정신은 과학과 예술의 통합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20세기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새로운 차원의 시각을 모색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

모흐리 나기의 합리적인 이론과 제작은 표현주의를 기조로 출발한 바우하우스의 체질을 개조하는데 강력한 힘이었다.


금속 공예와 플라스틱의 디자인으로부터 활판 인쇄술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던 그는 사진 교실을 증설하여 주로 사진의 다른 예술 분야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실험한다.


그는 사진과 회화와 영화의 상호 연관성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인쇄 활자와 사진을 배합한 레이아웃이나 광고에 쓰이는 Typepoto란 매체의 연구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1933년까지 베르린에 거주하였고 히틀러를 피해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였다가 1937년 미국으로 간다. 시카고에서 뉴 바우하우스를 설립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미국에 전한다.


그는 뉴비전 8가지를 말한다.

•Photogram: 빛에 의한 추상적인 관찰

•Reportage : 어떤 사실에 대한 정확한 관찰

•Snapshot : 빠른 셔터 속도에 의한 순간적인 관찰

•시간을 길게 늘여서 운동을 정착시키는 완만한 관찰

•마이크로 사진, 적외선 사진 등 강조된 관찰

•X-ray: 투시 적인 관찰

•몽타주: 중복 노출에 의한 동시적인 관찰

•광학적으로 화학적으로 왜곡시키는 왜곡된 관찰


이런 혁명적인 실험 작품들은 사진의 표현 한계를 대폭 확장한 정통주의적 사진 기법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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