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m :1886 ~ 1944)


캔디드 포토(Candid Photo)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1928년 베르린 화보에 처음으로 발표한 재판 과정은 불법으로 촬영한 사진으로 이 한장의 사진이 순식간에 에리히 잘로몬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후로 국제회의에 초청받은 사진가가 되어 정치계와 예술계의 모든 주요 인물들의 사진을 찍는다.


잘로몬이 캔디드 포토를 실시 할 수 있었던것은 에르마 녹스라는 엄청나게 밝고 소형인 카메라의 등장으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에르마녹스 카메라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해서 캔디드 포토라는 새로운 사진 방법을 개척했다.


소형 카메라의 등장과 잘로몬의 탠디드 포토의 결합이 오늘의 보도사진 시대의 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의 위클리 그래픽지의 미술 편집자가 1930년 잘로몬의 사진을 보고 "이것이야 말로 Candid(진정하다) 하다" 고 감탄한것이 유래되어 캔디드라는 용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에리히 잘로몬이 캔디드 수법을 사용하게된 동기는 카메라와 찍히는 대상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어 뜨리고 대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 하나가 됨으로써 대상 그자체가 화면속에서 스스로 남김없이 들어나게 하고 대상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생생한 만남을 표현 하려는 것이다. 다른 사진가들이 인물에 대하여 표면적인 공적 생활에만 매달리고 있을때 그는 밖에서 어엿한 공인이 그들도 한낱 인간이며 가정에서는 남편인 동시에 어버이인 인간성을 파헤쳤다.


에르마 녹스 카메라

당시 프랑스 수상이던 블리앙은 국제회의에는 단 3가지만 필요하다고 했다. 두세명의 외무장관과 테이블 그리고 잘로몬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어디서든 나타나서 사진을 찍었다.


손을 들고 앞을 가르키는 사람이 당시의 프랑스 수상인 블리앙이다.

1931년 세계적인 명사 170여명을 찍은 "현대의 유명인들" 이라는 최초의 사진집을 출판한다. 당연히 캔디드 포토로 촬영한 사진들이다.


에리히 잘로몬은 사냥꾼이 사냥에 몰입 하듯이 사진가는 원하는 한장의 사진을 얻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계속 되는 전투 다. 라고 했다.














캔디드 포토(Candid Photo) ; 몰래 촬영을 말한다. 사진 찍히는 대상이 자신이 촬영되는지 모르게 촬영한 방법을 캔디드 포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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