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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n : 1886~1944)


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n )

에리히 잘로몬은 법학전공으로 법학박사 출신의 변호사 였다. 변호사 업이 순조롭지 않아 당시 독일의 최대 통신사인 올슈타인사의 기획부 사진기자로 들어간다. 탁월한 어휘력을 발휘 수많은 국제회의에서 일류 정치가들을 촬영한다.

에리히 잘로몬은 캔디드 포토(Candid Photo)라는 촬영 방법을 이용한다. 우리말로 몰래 촬영 이다. 잘로몬이 캔디드 포토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카메라 기자재의 발달에서 찾아야 한다.


1920년대 초에는 핸드 카메라의 전성기였다. 일안 반사식 카메라에 우수한 렌즈를 가진 것들이 만들어져 카메라 제조 공업이 약진 적으로 발달 하였다. 이러한 휴대용 핸드 카메라는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1925년 새로운 렌즈의 전형이 만들어지고 사진 역사상 획기적인 카메라 혁명이 일어난다. 독일의 에르네만사에 의해 엘노스타 F2 렌즈가 만들어진다. F2렌즈는 기존의 광학 렌즈의 밝기를 상당히 증대 시킨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장비들이 소형 카메라 시대를 여는 중요한 동기를 준다.



에르마녹스 카메라

한마디로 에리히 잘로몬은 에르마녹스 카메라와 밝기 2의 렌즈의 탄생이 캔디드 포토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1928년 베를린의 저명한 사람들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법정 내의 캔디드에서 뛰어난 성공을 이루게 된다. 1929년 이후 올슈타인 이외에도 각국 잡지에서도 일을 하게 된다. 에리히 잘로몬이 특히 열심히 촬영한 것은 정치 외교 분야의 인물로 당시의 여러 정치 회의 및 국제회의에는 빠져서는 안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모습이 나타나곤 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수상을 지낸 브리앙이 외상으로 있을때 “각국의 외무장관과 회의용 탁자와 잘로몬 박사만 있으면 국제회의가 성립된다,는 말을 할 정도 였다.

이러한 잘로몬의 사진을 보고 런던의 위이클린 그래픽지의 미술 편집자가 1930년 잘로몬의 사진을 가르켜 “이것이야 말로 Candid(진정하다)하다”고 감탄 한때 부터 캔디드란 용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1931년 잘로몬은 “갑자기 찍은 유명인들” 이라는 사진집을 출판. 이것은 그때까지 잘로몬이 캔디드 방법으로 촬영한 사진을 모은것으로 캔디드 포토의 최초의 사진집이다.

►잘로몬이 캔디드 수법을 대담하게 하게된 직접적인 동기

카메라와 찍히는 대상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어 뜨리고 대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 하나가 됨으로써 대상 그 자체가 화면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본 모습을 들어내게 하려는 것이었다.그리하여 대상 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생생한 만남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다른 사진가 들이 인물에 대하여 표면적인 공적 생활에만 매달리고 있을 때 그는 밖에서는 어엿한 공인인 그들도 한낱 인간이며 가정에 서는 남편인 동시에 어버이인 인간성을 파헤쳤다.


손으로 가르키는 사람이 프랑스 수상 브리앙이다. 에리히 잘로몬이 오는것을 보고 가르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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