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르(Nadar)


본명은 가스파르 펠릭스 투르나송 이다. 나다르라는 이름은 그가 만화(캐리커처)를 그려 신문이나 잡지에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젊은 시절의 판명이다. 사진가로 입신한 후에도 나다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1853년 형과 함께 파리에 스튜디오를 개설한다. 나다르가 활동하던 시기는 다게레오 타입과 탈보트 타입의 인기는 한풀 꺽이고 클로디온 습판법이 새롭게 자리잡은 시기다. 나다르는 성격이 쾌활하고 호인형 이었기 때문에 그는 당대의 저명한 예술인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그들은 나다르의 초상 사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포즈로 아무것도 없는 배경 속에서 촬영한 그의 인물 사진은 상당히 뛰어났다. 그의 인물사진은 무척 간결하고 직선적이다.


나다르의 사진관은 분업 체계로 일을 진행 했다. 촬영,암실,수정,조명,배경,디자인등으로 나눠서 일을 진행 했다. 나다르가 직접 촬영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인물의 포즈나 완성된 사진에 서명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다르는 사진 이론은 단 한시간이면 배운다. 기술은 단 하루면 익힐수 있다. 그러나 가르쳐서 될 수 없는 것은 빛을 읽는 감각이다. 누구도 사진 찍히는 사람의 개성을 어떻게 포착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심오한 차원에서 인물의 내면까지 담은 사진을 만들려면 그 인물의 정신 세계로 뛰어들어가 그의 기질을 파악해야 한다. 고 강조 했다.


1855년 부터 나다르는 사진을 예술로 인정 하라는 투쟁에 동참 한다. 싸롱전에 사진도 받아 드려야 한다고 여러번에 걸쳐 자신이 직접 그린 삽화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또한 인공광을 개발해서 지하 공동묘지 사진이나 하수도를 촬영하고 열기구를 타고 파리의 상공에 올라 최초의 항공 사진도 시도 하면서 사진의 시각 확장에 최선을 다한 사진가라고 볼 수 있다.




지하 공동묘지에서 셀프 포튜레이트를 촬영한 나다르

열기구를 탄 나다르

나다르의 친구인 도미에 라는 화가가 나다르를 비난한 삽화을 그렸다. 한마디로 사진을 예술로 올리려고 까불지 마라 라는 의미를 담은 그림이다.

나다르가 항공 촬영한 파리의 모습




나다르의 아들인 포올 나다르는 자택 사진을 개척한 사진가로도 유명하다. 어느 사람이나 자신의 집이 가장 마음이 편안 하다는 심리 상태를 최대로 이용한 사진들이다. 또한 사상 최초의 인터뷰 사진도 촬영했다.


초창기 사진가중 유난히 셀프 사진을 많이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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