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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옥타 비어스 힐(David Octavius Hill: 1802-1870)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1일 전
  • 2분 분량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유명한 풍경화가였다. 그의 로맨틱한 풍경화는 당시 높이 평가되었고, 현존하는 여섯 점의 작품을 보면 빅토리아 왕조 시대 회화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843년 5월, 스코틀랜드 교회의 분열을 기념하여 474명의 성직자 및 유명 인사의 초상화를 의뢰받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그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고, 주변의 권유로 사진을 활용해 보라는 제안을 듣게 된다. 사진에 대한 기술이 없었던 그는 고민하던 중 당대의 유명한 사진 기술자인 로버트 아담스를 소개받아 함께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 역시 당시 일반적인 인식처럼 사진을 단순한 복사 및 기록 수단 정도로 여겼지만, 아담스와의 협업을 통해 사진의 예술성을 발견하게 된다. 로버트 아담스는 탈보타입의 기술자로서 뛰어난 실력을 지녔고, 힐은 예술적 감각을 사진에 도입하여 그들의 작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들의 사진은 대상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대담하고 단순한 구도와 함께 조형 감각과 직감력이 돋보였다. 특히 명암과 인물의 포즈 표현이 인물사진에서 큰 매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들이 탈보타입을 사용한 이유는 영국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이 인화지 특유의 계조와 부드러움이 인물 표현에 적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된 초상화 작업은 결국 중단되고, 그는 사진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로버트 아담스가 27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이들의 협업은 막을 내리게 된다. 1843년부터 1847년까지 스코틀랜드 사진술의 여러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이 파트너십은 아담슨이 1848년 요절하면서 짧게 끝났지만, 그들은 약 3,000장의 칼로타입(calotype) 사진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초상사진, 풍경, 건축물, 그리고 뉴헤이븐 어촌 마을의 어부와 어부 아내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초기 사회 다큐멘터리 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이후에도 여러 파트너와 함께 작업했지만, 아담스와 함께일 때만큼 완성도 높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국 힐의 사진 활동은 로버트 아담스라는 존재로 가능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아담스의 죽음 이후 그는 다시 화가로 돌아갔다. 말년에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로버트 아담스와 활동했던 5년이라는 짧은 사진 활동 기간 동안 그가 이룬 인물사진의 성과는 현대에 와서 그를 인물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하고 있다.


데이빗 옥타비어스 힐과 로버트 아담스
데이빗 옥타비어스 힐과 로버트 아담스
데이빗 옥타비어스 힐의 풍경화
데이빗 옥타비어스 힐의 풍경화
474명의 단체화
474명의 단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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