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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브래디(MathewBrady ;1822~1896)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1일 전
  • 2분 분량

미국의 선구적인 사진가로, 특히 남북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사진에 담아 대중에게 전달한 공로로 '사진 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린다.


브래디는 전신기를 발명한 새뮤얼 모스 밑에서 사진술을 배웠습니다. 모스는 미국에 은판 사진술(daguerreotype)을 처음 도입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브래디는 이 기술을 습득하여 1844년 뉴욕에 자신의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는 당시 유명 인사들의 초상 사진을 찍으며 명성을 쌓았는데, 존 퀸시 애덤스와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여러 미국 대통령들의 사진도 그의 작품이다. 특히 링컨의 초상 사진은 그가 남북 전쟁 종군 사진가로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861년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브래디는 전쟁의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자금을 투자하고 알렉산더 가드너, 티모시 오설리반 등 여러 사진사를 고용해 팀을 구성했다. 이들은 이동식 스튜디오와 암실이 갖춰진 마차를 이용해 전장을 따라다니며 콜로디온 습판법으로 전쟁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당시 사진술은 촬영 후 즉시 현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마차를 이용해 암실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 덕분에 대중은 신문 기사나 그림으로만 접하던 전쟁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브래디와 그의 팀이 남긴 수천 장의 사진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기존의 낭만적인 전쟁 묘사와는 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1860년2월27일 아브라함 링컨 이 쿠퍼 유니온에서 그의 유명한 대통령 후보 연설을 마친 후 브래디의 스튜디오를 방문 사진 촬영을 하였으며 그때의 사진은 링컨 을 존엄하고 강인한 그리고 지적인 인물로 보이게 하였다.

 

그 사진은 투박하고 촌스러우며 저능아라고 링컨 을 혹평한 상대 후보의 진술을 반박, 링컨 이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링컨 은 후에 “브래디와 쿠퍼 유니온 연설이 나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회고 했다 한다.

 

남북 전쟁이 끝난 후, 브래디는 전쟁 사진들을 정부에 팔아 빚을 갚으려 했지만, 정부는 사진 구매를 거부했다. 전쟁의 기억을 잊고 싶어 하는 대중의 외면 속에 브래디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1896년 뉴욕병원에서 가난한 생을 마쳤고 그가 찍었던 위대한 남북전쟁의 영웅들과 함께 앨 링 턴 국립묘지에 묻혀있다.

 

비록 그의 말년은 비극적이었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사진들은 오늘날 중요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남북 전쟁의 기록사진은 미국에서 가장 귀중하고 또 유명한 자료로 간주되고 있다. 그때 촬영한 약 7000장의 네거티브들은 미국 국립 보관소와 의회 도서관에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은 전쟁 사진뿐만 아니라 인물 초상 사진 분야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카메라는 역사의 눈'이라는 그의 신념을 증명하는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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