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정상원TV

피터 헨리 에머슨(Peter Henry Emerson ; 1856~1936)

  • 작성자 사진: Sangwon Jung
    Sangwon Jung
  • 1일 전
  • 3분 분량

피터 헨리 에머슨
피터 헨리 에머슨

영국의 작가이자 사진가 이다. 그는 사진을 예술 형식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특히 '자연주의 사진'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을 쿠바와 미국에서 보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1869년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클레어 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다.


조류 연구를 위해 1881년부터 사진을 시작했다. 1884년에 이스트 잉글리아 지방의 늪지대인 '노퍽 브로즈(Norfolk Broads)'에 정착하면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에 매료되어 사진가로서의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그는 사진이 회화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자체의 예술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위적인 조작이나 합성 인화를 거부하고, 사람의 눈이 자연스럽게 보는 것처럼 원경을 흐리게 표현하는 '차등 초점(differential focusing)' 기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자연주의 사진'으로 불리며, 사진 초기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회화주의 합성사진에 빠져들고 있던 사진 경향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는 뜻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서 주제를 구할 것을 제창한 사진가 다. 그는 로빈슨의 저서를 “문학상의 오류와 예술상의 시대착오의 화신”이라고 배척 하면서 과학적 원칙에 기초를 둔 예술이론을 청중에게 호소 한다.

에머슨은 1889년에 출간한 저서 《사진 예술 학생을 위한 자연주의 사진(Naturalistic Photography for Students of the Art)》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체계화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예술가가 자연을 진실하게 대한 경우에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 탄생 하였고 반대로 자연을 도외시하고 자기의 상상력대로 움직인 경우에는 저열한 예술품이 만들어 졌다.그러므로 자연은 예술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 사진은 회화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만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눈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 기반하여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눈이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출 때 주변부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처럼, 사진 또한 중심 피사체는 선명하게, 배경은 부드럽게 표현하는 '차등 초점(differential focusing)' 기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물리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의 시각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회화주의 사진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합성 사진, 이중 노출, 인화 과정에서의 수정(리터칭)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조작을 "좋든 나쁘든 사진을 나쁜 그림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정의하며, 사진의 정직성과 현실성을 강조했다.

에머슨은 당시 사진계의 주류였던 헨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과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렌더(Oscar Gustave Rejlander) 등의 '회화주의(Pictorialism)' 사진가들과 격렬하게 대립했다.

회화주의는 사진을 회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여러 장의 네거티브를 합성하거나 인화 과정에서 부드러운 효과를 주는 등 인위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이는 사진을 예술로 인정받기 위한 시도였으나, 에머슨은 이를 "사진을 회화로 전락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에머슨은 로빈슨의 합성 사진 기법을 '속임수'라고 맹렬히 공격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머슨은 1891년에 자연주의 사진의 죽음(The Death of Naturalistic Photography)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일부 철회했다. 그는 사진이 과학적, 기술적 한계 때문에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없으며, 단지 "과학과 예술의 시녀"일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의 이론은 결국 철회되었지만, 회화를 모방하지 않고 사진 자체의 특성을 살려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훗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사진 분리파(Photo-Secession)'와 현대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Straight Photography)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사진의 예술성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논쟁은 사진이 독립된 예술 매체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스의 조각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콘스터블(영국의 풍경 화가) 및 바르비종파의 새로운 자연파 그림을 고금을 통하여 예술품의 정점 이라고 말을 하였다. 그는 사진이 원근을 정확하게 표현 하는 점에서 에칭,목판,목탄화 보다 우수하며 색채가 없고 정확한 색조의 관계된 표현력이 부족한 점에서만 회화 보다 못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886년 에머슨은 한정판으로 40장의 인화된 실물을 붙여 “노오풀크 브로우드즈의 생활과 풍경”이라는 2절판의 책을 출판, 사진은 모두 동부 잉글랜드에서 촬영 한 것으로 늪지대 주민들의 기이한 물과 육지 생활의 기록 이었다.

이 책은 인종학적 연구이며 사진이 빠질 수 없는 부분을 이루고 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은 현장에서 때로는 험난한 고생을 무릎 쓰고 찍은 것인데 모든 것이 정직하고 솔직한 사진 이었다. 이들 사진은 감상적인 것이나 인위적인 것이 없으며 로빈슨과 그의 추종자들의 예술사진과는 정 반대의 사진 이었다.


그의 사진에 대한 권고는 올바른 것이며 현재에도 읽어서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 한다. 그는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촬영된 네가 는 촬영 당시의 상이 생생한 동안에 현상 하도록 권고 하였고 또한 수정은 좋지 못한 방법이라고 배척 하였다. 


에머슨이 주장한 지금까지의 내용은 정당한 것으로 정통에 기반을 둔 사진을 지향하는 방법이며 이른바 스트레이트 포토 그래피의 주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은 에머슨의 초점 이론이다. 그는 우리의 시계는 전부가 선명한 것은 아니라고 논증 함.그가 말한 내용은 중앙 부분은 윤곽이 분명하게 보이지만 가장자리 부분은 다소 흐리게 보인다. 따라서 카메라로 인간의 시각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카메라의 렌즈가 초점을 조금 벗어나게 하도록 사진가 에게 권했다.(약간의 아웃 포커스) 그는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은 어느 피사체에 대해서도 그 구조를 파괴할 만큼 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1891년 1월 자연주의 사진의 죽음 이라는 검정 테를 두룬 팜플렛에서 “내가 일찍이 생각한 것은 확실한 명암의 톤을 얻으려고 현상에 의해 마음대로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어떤 물체에 대해서도 사진가가 원하는 대로 명암의 톤을 내고 더구나 그것을 자연 그대로 표현해 낸 다는 것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것을 느꼈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진이 매우 한정된 예술이라는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다. 나는 이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 한다”라고 말을 하였다. 


그 후로 그는 사진계의 뒤로 물러 앉았다. 그러나 사진을 포기 하지는 않았다. 그의 대담한 부정은 미학의 문제 라기 보다는 의미의 문제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예술과 미술이 동의어 였던 것처럼 생각 했기 때문이다.



댓글


  • 정상원TV
  • sajintour
  • 정상원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중로  대표:  정상원
사업자등록번호 179-44-00921 통신판매업 제2022-고양일산서-1866호 
​상담:  010-5967-2641  email :yeijisajin@gmail.com

© 2020 by Onlinephoto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